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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유주얼 X Changemaker]
세상을 바꾸는 게으름-게으름연구소 조희연

[루트임팩트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를 발굴하고, 일, 삶, 배움의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을 지원합니다. 우리가 직접 만난 체인지메이커들의 이야기를 문화 무크지 언유주얼을 통해 전합니다.]


지난봄 즈음이었을까. '게으름연구소'라는 프로젝트팀이 성수동 신촌살롱에서 저녁 프로그램을 열었다. 두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참가자들은 한없이 게을러지면 된다는 게 그날의 유일한 준비물이었다. 게으름의 단상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직장인, 학생, 동네 주민들은 자리에 누워서 우쿨렐레 연주를 들으며 잠을 자기도, 술을 마시기도, 발가락을 까딱거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 언유주얼 6호의 주제를 듣고 게으름을 덕질하는 이 사람이 떠올랐다. 게으름을 사랑해 '게으름 연구소'까지 차린 체인지메이커 조희연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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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A. 게으르게 지내고 있어요.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에요. 일명 '퇴사자' 상태거든요. 7년 전 제가 서른 살일 때 직장을 한 번 그만두고 쉰 적이 있었고 그 후로 올해 두 번째 퇴사를 하게 됐죠. 첫 퇴사는 번 아웃 때문에 회복을 열심히 했고요, 이번에는 말 그대로 게으르게 지내고 있어요. 게으름을 실천하고 있죠.



Q. 언행일치의 아이콘이시네요. 일반적으로 '게으름'은 종교적인 죄악이나 벗어나야 하는 상태로 취급되는데 게으름연구소가 생각하는 게으름이란 무엇인가요?


A. 일반적으로 게으름하면 누워 있거나,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는 상태를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게으름을 피우는 법이 있어요. 가만히 멍 대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서점에서 도둑 독서를 하는 모습으로도 보이죠. 게으름에 대한 단 하나의 정의는 없다고 생각해요.


Q. 많은 게으름 중에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는 무용한 상태는 특히 손가락질 받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A. 그런 편견이 싫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게으름 파트너인 연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생산성을 강요받는 느낌인지 의문이 들었거든요. '좀 쓸모없어 보이면 어때?'라는 질문을 가지고 게으름에 대한 철학과 역사에 대해 공부했는데,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인간은 더 많은 시간을 생산에 쏟아야 했더라고요. 생산을 위해 출근과 퇴근 시간도 덩달아 잘 지켜여만 했고요. 한편에서는 게으른 상태에 놓여 있을 때 평소에 덜 사용하던 뇌를 사용하게 된대요. 기억력이나 창의성이 증진된다는 연구도 많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용함의 유용함이라든지 게으름의 미덕을 더 깊이 파 보고 싶어진 거죠.



"남들이 보기엔 바빠 보여도 제가 무언가를 할 때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게으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Q. '게으름 연구소'라는 작명 자체가 아주 역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과정이 참 궁금해요.


A. 게으름 파트너인 연희는 자칭 타칭 게으른 친구였어요. 저는 그 반대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평상시에 그런 그녀의 성향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함께 여행도 다니고 서핑도 하면서 게으름에 대한 키워드를 조금씩 찾아봤어요. 그러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Idler(아이들러)라는 잡지를 만났어요. Idle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상태'라는 뜻이에요. 우리말로 하면 '게으르머' 정도가 되려나? (웃음) 아무튼 게으름이 곧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죠. 한국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게으름이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균형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연희, 준걸, 여은, 요요진과 게으름연구소를 자연스레 결성하게 된 배경이죠.



Q. 그렇다면 본인이 게을러지면 되는 걸, 굳이 왜 바쁘게 게으름을 연구하고 있는 거예요?


A. (웃음) 태생인 것 같아요. 제가 PR 에이전시에서 일을 했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게으름을 이야기하고 홍보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할수록 힘이 나더라고요. 어쩌면 게으름을 연구하는 저의 모습이 곧 제가 게으름을 누리는 방식일지도 모르잖아요. 남들이 보기엔 바빠 보여도 제가 무언가를 할 때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게으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Q. 10년 전엔 부정적으로 통용되던 '덕후'라는 말이 지금은 심지어 '덕후가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라는 말로도 쓰여요. 게으름도 세상을 이롭게 할까요?


A. AI를 연구하는 공학자들 중에서, '무언가를 하기 싫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새로운 혁신이 탄생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아요. 게으름은 발명의 원천인 거죠. 이런 자료들을 접하다 보면 '어?!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게으른 게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쯤 되면, 적당히 게으른 건 재밌게 봐줄 수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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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가 게으름연구소 페이지에서 재밌게 봤던 게 '게으름 북살롱' 이었는데요, 졸면서 읽는 건가요?


A. 게으름과 책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을 여덟 명이 나눠 읽는다는 게 '게으름 북살롱'의 포인트예요. 그리고 각자 읽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책 한 권의 독서를 끝마치죠. 부담이 없으니까 한 달 내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모임 날 지하철에서 읽고 오시는 분도 있어요. 재미있는 게, 읽을 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니까 오히려 한 권을 다 읽는 분도 생기더라고요. 작은 성취를 맛보면 더 큰 성취를 할 수 있는 것처럼요.



Q. 게으름연구소 설립자 조희연에게 가장 인상 깊은 책은?


A.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좀머 씨 이야기>요. 이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자아를 잃어 가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고 느꼈어요. 좀머 씨가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이야기하는 게 참 와닿기도 했고요. 게다가 쥐스킨트는 은둔형 작가잖아요.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히는 것, 문학상 수상조차 거부하고요. 그런 면모들이 게으름을 탐구하는 제게 참 인상 깊었어요.


Q. 희연 님이라면 쥐스킨트가 만나 줄 것도 같아요(웃음). 게으름덕후 조희연이 생각하는 '덕후'란 뭘까요?


A. 인생에서 한번쯤은 되어 보고 싶은 거요.


Q. 마지막 질문이에요. 우리 사회는 실제로 노동 강도가 높기도 하고, 최근에는 야당 대표가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희연 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A. 게으름을 파고들다 보니 말씀하신 문제들과 연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노동은 더욱 고도화되고 단순 노동이라 불리는 일은 점차 사라진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은 어떻게 하면 게으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빨리 연구해야 한다고도 말하죠. 게으름은 우리에게 생겨날 비생산적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화두예요. 이런 전망들을 듣다 보면, 게으름을 파고드는 일은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게으름을 연구하면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게으름을 덕질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 끈을 계속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솔루션을 찾지 않을까요?



▶게으름연구소 조희연 님의 인터뷰가 실린 [언유주얼 매거진] 6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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